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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한끼

고통 총량의 법칙 :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해볼까?

by DannyOcean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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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서 중, 고등학교 동창회를 하면 학생 시절에 조용히 공부만 하던 친구가 멋들어지게 성공을 해서 나타나는 클리셰를 종종 보곤 한다. 좀 더 극단적으로 연출하는 경우에는 이 공부한 한 친구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힘들게 사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뭐..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거지 라고 하지만, 그래도 현실세계에서 내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학생 시절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나름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나이가 들고 어릴 때 친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대화의 소재는 어릴 적 이야기도 하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나 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비교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현재 내 삶과 그들의 삶에 갭(gap)이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출처 : 에듀팡 뉴스

내가 보기에는 고난과 고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고난과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는 고난을 말한다. 어쩔 수 없는 고난은 인생에 있어서 불의의 사고 같이 다가오는 것을 말하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고난은 남들은 쉴 때 쉬지 않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학생 시절에는 놀기보다는 학교 공부 혹은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을 한다던지, 성인이 되어서는 남들 쉴 때, 직장에서 역량을 높이기 위한 준비 혹은 다른 분야를 나아가기 위해 준비 혹은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학생 때는 누군들 안 놀고 싶으며, 직장인은 퇴근하고 와서 누군들 안 쉬고 싶을까?   

 


라플라스 방정식

고통 총량 불변의 법칙

혹시 이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모든 고통의 크기가 동일하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고통량은 각자 다르지만 이 타고난 고통이라는 게 무한정이 아닌 정해진 양을 겪게 되는 것이다.

 

사소한 예로 젊을 때부터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한 사람과 늘 술을 입에 달고 운동 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의 노년에는 분명 건강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학생 시절에 그래도 공부에 시간을 들인 아이는 앞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미래에 선택지가 더 많이 주어질 수도 있다.

 

나에게 정해진 고통량이 남들보다 많다고 해도, 젊은 시절에 그 고통들을 내가 선택해서 많이 겪는다면 노년에는 이전 삶에 비해 훨씬 편안한 생활을 할 확률이 높다.  

 


고난의 보상?

그럼 내가 노력한 만큼 결실은 무조건 다가온다고?

내 인생에 고통량도 정해져 있고, 젊어서부터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남들 쉴 때 무언가 준비를 한다던지, 공부를 하는 등 내가 노력한 만큼 나중에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무조건 받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고방식의 접근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내가 젊어서부터 건강관리를 한다고 해도 노년에 불의의 병에 걸릴 수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우등생이라도 모두 다 좋은 대학에 가서 멋지게 성공하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삶이라는 것이 정직한 듯하면서도 정직하지가 않다. 내가 위에서 말했 듯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고난들을 선택하고 경험하면 이에 따른 보상을 얻을 확률이 높다라고 한 것이다. 

 


진인사대천명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 내가 오랜 기간 노력을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하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든 고난과 경험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결괏값만 보고 내가 고생한 것이 의미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면 안 된다.

 

그 고난의 과정 속에서 나 스스로가 역량을 쌓고, 삶의 사고방식이 확장되어서 다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한 그 고난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다른 기회를 발견하고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의 인생은 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이성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기에 인간의 원하는 것이 아닌 신의 입장에서 그에게 맞는 형태로 무언가를 줄 것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은 무조건 다가오는 것이 아니니깐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자 라는 말은 삼가자. 그래도 신은 어느 정도 노력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보상들을 준다고 믿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최소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지 하늘도 이뻐하지 않을까?

 


출처 : HR인사이트 _ 어쩔수 없는 고난도 좋게 생각 하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씻고 소파에 누워서 맥주 한 잔과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한 판 할 수도 있다. 이런 삶을 만족하면 이대로 살아도 좋다. 단, 돈과 미래에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고 싶어 하고 미래를 걱정한다.

 

결국 나중에 나이가 들고 근로소득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시기가 오고 그제야 부랴부랴 무언가를 시작하지만 이미 머리는 굳어있고, 몸은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제야 준비한 것이 잘 안 되면서 결국 운명 탓만 할 것이다. 노년이 되어서야 그 '고통의 총량'이라는 녀석이 슬그머니 적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 고통의 양이 정해져 있다면 차라리 미리 고난을 선택해서 준비를 하자. 물론 어쩔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와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년에 어차피 겪을 고통들을 미리 겪는다 생각하고 이때는 다른 걸 하는 거보다 현재 하는 일을 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 체력과 두뇌의 사고력이 떨어질 때 겪는 고난보다는 젊을 때, 나에게 열정과 체력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고난이 상대적으로 훨씬 나을 수 있다. 어차피 다가올 고난과 고통이라면, 그리고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그 고난과 고생을 사서 나의 미래를 위해 혹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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